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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산꾼의 치악산 산행기(완결)

등록일03-07-04 조회수97 댓글0

비개인 하늘이 안개로 자욱한 아침을 뚫고 출근길 시동소리가 힘차다.
하루걸러 주관해야 하는 Workshop과 이어지는 술자리에 지쳐 잠드는 날들이 계속되며 온몸은 솜 뭉치 처럼 나른했는데 간 밤에 깊게 잔 수면이 도움되었는지 모처럼 개운하다.

산행은 8시간 걸렸건만 후기가 80시간이니 글쓰기가 산오름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제법 산꾼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런지?
(혹,.. 이 대목에서 웃는 선배님 계시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바라며..)

계단 옆 안내판엔 오후 2시 이후의 입산을 금지한다는 문구로 이번 산행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었으니 나같은 초보가 겁먹기 딱 좋은 경고이리라.
잠시 한눈파는 사이 일행은 시야를 떠나고 순서를 기다리는 폭 좁은 계단에는 단체인 듯한 아주머니 등산객의 행렬이 가득하다.

마음은 급해 시선은 앞서간 동료를 찾는데 느릿한 행렬은 수다가 목적인 듯 발보다 입이 바쁘니 도무지속도가 나질 않는다.
이러다 미아되는 것 아닌가 싶어 크게 한숨 고른 후 양쪽으로 줄지어 오르는 아줌마부대 사이를뚫고 철인경기하는 선수마냥 뛰어오르니 속 모르는 여편네들의 감탄사가 뒤따른다..

가슴까지 차 오르던 숨을 몰아쉬며 일행의 꼬리를 밟을 무렵 짧게 이어지는 평지가 나타난다.
좁게 이어진 오솔길 사이로 하늘 깊게 올라선 푸른 숲이 첫사랑 여인인 둣 반갑고 간간이 들리는 산새소리는 천상의 노랫가락이니 내 흘린 땀의 보상으로 감사히 받으리라.

다시금 오르막이 시작된다.
지면위로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잡고 힘겹게 오르는 길... 손에 든 물병이 거추장스럽다.
한동안 말없는 행군이 계속되더니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산속에 한편의 에로영화가 펼쳐진 듯 거친 숨소리만 가득하다.

한시간여를 걸었을까. 해발 700m를 지나며 잠시 평지가 이어지고 안내판은 사다리평창 초입임을 알려준다.

사다리 병창.......
치악산 산행의 대표적인 직등코스로 평균 경사도가 40°에 달할 정도이며 치악산 등산로 중 가장 가파르고 힘든 코스라는데 이제껏 온 길도 힘들었건만 그보다 더 험하다니.....눈앞이 노래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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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조그만 터를 찾아 무겁게 짓누르던 배낭을 내려놓으니  이제껏 흘린 땀은 산바람에 날아가고 얼려 온 막걸리 한잔에 세상이 다 내 것이다.

역시 산행선배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초보인 내가 준비한 것은 얼려 온 물통에 쵸코렛 3개가 다이니 권할 것없이 얻어먹기가 미안스럽다....
다음에 동행할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하리라 마음먹지만 맘같이 실행할 수 있을런지.......

느슨해진 등산화 한번 더 동여매고 죽음의 경사를 오르기 시작한 지 오래잖아 숨은 턱까지 차 오르고 호흡마져 가빠온다. 가뜩이나 짧아진 호흡에 머리가 어지럽고. 풀려 가는 다리에 그냥 주저 않고만 싶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급경사..정말 종류도 많다..철계단, 나무계단, 돌계단에 보너스로 밧줄까지 있다.
점점 쳐지는 나의 느린 행보는 일행과의 거리를 더욱 벌려 놓으며 뒤따르던 일단의 무리마져 어느새 하나 둘 추월을 거듭한다.

이젠 아무도 말이 없다. 간간이 들리던 산새소리 마져 끈기고 그냥 침묵의 발자욱 소리만 울릴뿐... 내가왜 여길 왔는지..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를 가는지..의식마져 몽롱한 채 휘청거리는 발걸음만 흐느적대고있다.

간간이 쉬어 가는 사람은 있되 되돌아오는 사람은 없다.
포기하고 싶은 맘 간절하지만 어느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포기란 김장할 때만 쓰는 것이라고"
비오듯 쏟아지는 땀으로 온몸이 후즐근해 질 무렵 가슴으로부터 짜릿한 진동이 전해온다,

평소 울리길 거부하는 듯 내 벨소리마져 잊을 만큼 장식용이 되어버린 휴대폰에 떠오른 낯선 전화번호 "하늘님 저 왕건입니다~~~~"  몰아쉬는 숨소리로 대답하기가 힘겹지만 너무도 반가운 목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간의 안부를 전한다.

처음 인터넷을 접하며 같이했던 음악방의 선배님이기에 가끔 안부라도 드려야 했건만 마음만 앞선 채 행동하지 못한 죄스러움에 기약없는 술 약속으로 마무리하며 다시금 걸음을 재촉한다.

"악"자가 들어 있는 산치고 편한 산 없다기에 그냥 만들어 낸 말인 줄 알았는데
오를수록 치를 떨고 악....소리도 절로 난다. 주변의 경치를 볼 여유는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오직 정상을 밟아야 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만 남아 한발 한발 힘겹게 걸음만 재촉할뿐......

누군가 말 걸어온다..."아저씨, 깔딱 고개가 멀었나요?"
"깔딱 고개?" 난 지금도 깔딱 깔딱 이건만 이보다 더 험한 길이 남았던가?
마음속으로부터 괜히 왔다는 후회 감이 밀려든다. 아무튼 나 또한 초행길임을 알리고 화이팅을외쳐 서로에게 힘을 더해준 후 앞선 일행을 쫒아 서둘러 언덕을 오른다.

바위능선에 박힌 쇠말뚝을 조심스레 밟고 올라서며  해발 900미터 지점을 지나니 이정표는 정상까지 1Km를 가리키고 있다.
한숨 돌리며 치켜든 시야에 이제껏 지나온 경사는 동네 언덕에 불과할 만큼 보기만해도 숨차 오르는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덜컥 겁이 난다. 하지만 어차피 올라야 할 길...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수는 없지 않은가?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양사언의 옛 싯구를 떠올리며 다짐을 더하곤 큰숨 한번 몰아쉰 뒤 힘차게 걸음을 옮기니 어느덧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계단이 눈앞에 있다.

300계단만 오르면 정상이니 힘내라는 하산팀의 응원을 업고 하나 둘 계단세는 여유까지 보이며 마지막 숫자를 셀 때 눈앞에 펼쳐진 하늘 맞댄 돌무덤.......

"비로봉 1288m" 정상을 알리는 검은 비석 앞에 경건히 올라서 안개 자욱한 아래를 굽어볼 때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은 환희의 정점으로 가슴까지 차 오르는 감격을 더해 나를 주저앉게 만든다.

앞으로도 얼마간의 산행을 더할 지 모르지만 오늘의 이 순간만은 평생을 같이 하리라..

산행보다 길었던 후기를 마치며 이젠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치악의 추억을 마무리하고 싶다..

61.255.146.236 현우: 누구더라?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오를수밖에 없었다고....산행기 아주잘 읽었습니다 올여름은 꼭 오래된 지난 475시절의 친구들과 여름밤의 별보기라도 한번 하고 싶습니다 날정합시다...  [07/04-08:27]
218.147.51.129 왕건: 사람들은 산을 오르고 정상을 밟으면 산을 정복했다 하지만 산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항상 그자리에 있을 뿐이다.  정복을 할려면 내려오지도 않고 천날만날 정상에 걍 붙어 있어야지 ㅋㅋㅋㅋㅋ 고생했습니다 하늘님.. 그래요 언제 한번 서로연락 나누고 광주에서 함 모이든동 합시다.. 농장 거들나게 만들어야져... 집들이하면 집을 번쩍들어야 하는데?  농장들이는 어떻게하지???  [07/04-09:03]
211.104.99.230 눈송이: 사흘만에 치악산 잘 다녀왔습니다~하늘님~
재미나게 잘 읽었었어요.다음은 어디 산에 가시나요?
세번째 산행기 기다리겠습니다.
왕건님 농장 번쩍 들으러 갑시다요~ㅎㅎㅎ
남자들 침흘릴만한 커다란 잘생긴 황구도 있을건디...
송이는 황구는 말고 그냥 동영상에 나오는 꼬꼬닭 한마리면 된디...
꼬꼬닭도 있나요?  [07/04-15:26]
218.149.107.230 적란운: 숨이 턱에 찬듯 하시더만....볼것 다 보시고...새하얗게 변한 머리속에 기억 할것 다 하셨으니...앞으로 산행이 많이 남으셨음이네요...오래 건강 하시길...^^  [07/11-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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