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요즘 복날이 되면 보신탕집이나 삼계탕집에서 이열치열이라면서
땀을 뻘뻘흘리면서 먹어대지만 내가 어릴적에는 여름 한 더위에
마을 어른들은 디리한다며 쌀을 얼마씩 거두거나 돈을 조금씩
거출하여 살이 통통하게 찐 마을에서 키우는 거시기네 누렁이를
눈독들여 놨다가 헐하게 사서 몰고 물이 졸졸 흐르는 산골짜기에
가거나 마을어귀 냇가 그늘나무 밑에 끌고가서 개패듯 두들겨 패서
잡아 고기는 푸욱 고아서 먹고 개껍데기는 불에 그을러서 술안주로
소금에 찍어 먹곤했다.
우리집에 키우던 개도 한복더위를 넘기지 못하고 마을 어른들에게
끌려가서 죽음을 당하는 꼴을 보고 어린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실컷 울다가도 아부지가 건네주시는 살점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삼키기도 했다. 커 가면서 개는 집을 지켜주고 강아지를 낳아 시장에
팔아 가계에 도움을 주고 나중에 통통하게 살찌면 마을 영감들의
눈총을 벗어나지 못하고 한 복더위 어느날 죽음을 당하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도 커가면서 누런 변견을 보면
느리침을 흘리게 되었다.
사람만큼 잔인한 동물은 없다. 먹이사슬에서 최 우위를 차지하면서
마구잡이 살상을 일삼는다. 악어가죽이 비싸게 팔리니깐 악어사냥에
혈안이 되어 악어의 생명을 위협했고 상아를 얻기 위하여 코끼리를
살상하지를 않나.. 몸에 좋다니깐 혐오식품도 불티나게 팔리고
코부라 등 뱀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들어오지 않나.. 인간이 스쳐간
자리에는 피폐하게 되어 온정케 남아나는 것이 없다.
여름 한 철 경치좋은 산골짜기에 인파가 몰리고 해수욕장에 피서객들이
모였다가 지나간 자리에는 쓰레기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더러워져 버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족들과 나들이를 나간다면
우리 민족이 예부터 가난하게 살아서 먹는데 포부가 들어서 인지 음식
부터 챙긴다. 경관을 즐기기 보다는 퍼즈리고 앉아 고기를 굽고 된장
찌개를 끓이고 수박 참외를 깎아 먹고 술판을 벌리고 춤을 추고 눈꼴
사나운 광경을 많이 볼 것이다. 당연, 놀고 지나간 자리는 쓰레기장이
되어 버린다. 요즘은 환경단속원들도 배치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투를 갖고 가서 차에 싣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지만 집에 있는 쓰레기를 싣고 나들이를 가서 버리고 오는 파렴치한도
있다 유원지 주차장 주변을 보면 차문을 열고 살짜기 버린 쓰레기가
주차장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누가 보지 않는다고
자기의 양심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저 높은 곳에서 하나님이 보시지
않는가!!
옛날에는 비록 못 살아도 인정만큼은 훈훈했다. 점심 때 뜨끈뜨끈한
감자 한 바가지로 온 식구가 끼니를 때워도 마음 만큼은 허기가 지지
않았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 끼니 때 오면 감자하나라도 나누어
먹곤 했다.
어린 우리들은 복날이 되면 참외서리를 작당한다. 누구누구네 참외가
노랗게 잘 익었더라.. 소를 먹이로 가서 사전답사를 하고 돌아온
부랄친구놈이 작전참모가 되어 저녁에 참외서리의 계획을 짜고 헤어진다.
소를 외양간에 매어놓고 저녁은 먹는둥 마는둥 하고 어둠사리가
깔리면 사전에 약속한 장소에 친구들이 모여서 컴컴해 지기를 기다린다.
칠흑 어두움이 천지를 덮으면 전쟁영화에서 보듯 우리들은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가며 목적지로 향한다. 원두막에 주인영감은 가끔 헛기침을
하면서 사람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비록 우리들의 행동을
알아 차리지 못하고 하는 행위지만 기침소리가 들릴 때 마다 우리의
발걸음은 앞으로 향하지 못하고 납죽이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그믐밤이라 참외가 노랗게 익었는지 분간할 수가 없고 우리들은 바지를
벗어 바지가랭이쪽을 묶어 자루와 같이 만든 옷 속에 손으로 더듬어
만져지는 굵은 참외를 따 넣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도 덜덜 떨리고
손은 참외밭을 더듬지만 눈은 자꾸만 원두막쪽으로 향했다. 대충 몇개를
바지자루에 넣고는 돌아서서 뛰지도 못하고 뒷걸음으로 참외밭을 나오다가
엉덩방아도 찢기도 하면서 밭가로 나와서는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이
모두다 걸음아 날살려라며 정신없이 도망을 친다. 어두움 속에서
발걸음 소리를 느낀 참외밭 주인영감은 그제사 참외서리가 왔다는 것을
알아 차리고 원두막을 내려오면서 큰소리로 야단을 치지만 우리는 벌써
냇가 모래사장에 앉아 킬킬거리면서 참외를 주먹으로 깨어서 맛좋은 속만
파먹고 내버리곤 했다. 익은 것으로 알고 딴 참외가 새파랗게 익지 않아
먹지도 못하고 버린것이 태반이었다.
그 때는 그런 행위가 장난으로 여겼지만 요즈음은 절도죄로 유치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친구네 참외밭에 자기 할아버지가 지키는데도 불구하고
친구와 같이 자기밭 참외서리를 나섰으니 그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촌에서
할 수 있었던 흥미꺼리였고 크게 죄의식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지금 도회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와 같이
느껴진다. 등치만 훌쩍하게 컸지 체력도 약하다. 어릴적에 촌에서 지게를
지고 컸던 우리세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참외와 수박은 과일가게에서
생산되고 배고프면 라면 사먹으면 된다고 느끼는 아이들에게 참외서리하던
우리의 옛 추억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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