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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등록일03-09-13 조회수97 댓글0

태풍이 핥고 간 자리는 너무나 처절하고 내 가슴을 아프게만 한다.
추석명절이라 촌이 고향인 사람들은 촌으로..도회지가 고향인 사람은
도회지로..각자 비록 올해 비가 많이 내려 농사는 흉작이라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움을 가득 담고 선물꾸러미를 한 아름씩 안고 고향으로 찾아 갔는데..

추석 연휴를 틈타서 자연의 거대한 힘이라도 자랑하듯이 매미라는 이름을 가진
몹쓸 태풍이 한반도에 직격탄을 가했다. 오랫만에 샌드위치 토요일을 휴가내어
그동안 바쁜 나날로 더운 여름을 회사에서 토 일요일 없이 지냈는데 이번 만큼
실컷 쉬어보자고 했더니.. 그런데 연휴 전날부터 밤 1시반에 호출을 받아
회사에 나가도록 하더니만 연휴 첫날 오전은 회사에서 긴급작업 관련 못쉬게
하였고..

급기야.. 오랫만에 명절 후 처가에 가서 장모 할마시랑 처남들 만나고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와 연락이 닿아 수성구 모처에서 회 한접시 시켜놓고
쇠주잔을 기울이는데.. 아닌밤중에 홍두께도 유만부동이지 갑자기 비가 정신없이
내리더니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요거는 보기드문 강적이구나
싶어서 친구를 먼저 보내고 세차게 퍼붇는 비바람을 피하여 큰 건물 현관 안쪽으로
몸을 피했는데..

비는 그칠려고 하지 않고 더욱 매몰차게 퍼붇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현관밖을
바라보면서 그냥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도로에는 빗물이 흥건했고 자동차도
바람에 밀려 비틀거리는 듯 했다. 가로수 나무가지가 뚝뚝 뿌러지고 잎사귀가
이리저리 정신없이 날아 다녔다. 바람소리가 무섭게 들리면서 건너편 가게 간판이
떨어져서 도로를 종이조각 날리듯 날은다.

그런데.. 내가 앉아있는 앞쪽 가로수가 휘청 휘청 거리더니.. 넘어지면서 옆에
있는 전봇대를 안가리 걸고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삽시간에 크다란 가로수와
전봇대가 함께 땅바닥에 꼬끄라지는데... 땅에 전봇대가 쳐박히는 순간 섬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주위는 암흑천지로 변하여 버렸다.

이제 거리에는 도망치듯 달려가는 겁먹은 자동차의 불빛밖에는 없다. 물을 튕기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차량이 있는가 하면 거북이 처럼 엉금 엉금 기어가는 차량도
있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자연을 극복한다고 하지만 대 자연의
길목을 차단하지도 못하고 자연의 큰 힘에는 미미하기 그지없는 하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그냥 조져앉아 하늘의
선처를 바라고만 있었다.

처가에 있는 집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꼼짝달싹도 못하고 건물안에 갖혀
있다니까 가까운 여관이나 호텔에 들어가서 주무시란다. 목을 빼꼼히 내어서
아무리 살펴봐도 근처에는 여관도 없고 호텔도 없다. 후진 여인숙이라도 있으면
들어가려고 해도 불이 꺼진 컴컴한 곳에서 박쥐도 아닌놈이 어찌 유숙할 곳을
찾는단 말인가..

회사가 걱정되었다. 교대과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울산에도 태풍이 쑥대밭을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장 콤프레샤 하우스의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보온함석이
어지럽게 날리고 공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있단다. 그래.. 지붕이야 날아가면
다시 이으면 될테고 공장만 잘 돌아가면 그 쯤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혼자
생각했지만.. 한참을 기다리다가 또 전화를 때렸다. 밤 11시가 넘었을까? 전화를
받는 교대과장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렸다고 해야하나? 당황하여 어쩔줄을 모른다고
해야하나? 수화기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자포자기하는 듯 들렸다. 한전에서 정전이
되었고 공장 플레아스택의 불꽃만이 주위를 밝히고 아귀지옥과도 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렵게 공장을 보수하여 정상쾌도에 올려 놨는데 하루아침에 도루묵이 되는 순간
이다. 잠시동안 머리속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전이 되면 공장 전체가
가동정지가 될테이고 그러면 그 손실과 정상운전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정전으로 Emergency Shut Down에 돌입되면 돌이킬 수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한다. 친구와 마신 술의 취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빨리 울산으로 내려
가야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태풍이 북상을 하면서 거센 바람까지 함께 데리고 올라가는지 차츰 바람이 약해
졌고 빗줄기도 가늘어 졌다. 우산을 펼쳐드니 흩뿌리는 빗줄기에 옷은 젖지만
얼마정도의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우산을 펼쳐들고 인도로 나와서 지나가는
차량을 향하여 손을 들었다. 그런데 자가용 한대가 내 앞에 서더니 타라고 했다.
회사에서 영업을 하는 사람인 모양인데 친절로 나를 감동감화 시켰다. 시내에
가려면 지금 향하는 방향의 반대쪽인데도 불구하고 차를 돌려서 시내 모처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은데 좋은 사람은
들어나지 않고 나쁜 사람만 메스컴을 타니까 나쁜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것으로
비취는 모양이다.

그 아저씨 나를 내려주면서 명함 한장과 비디오 테이프하나를 건네주었다. 비가
내리고 경황이 없어서 내용을 알아 보지는 못 했지만 아내가 대충 훑어 보고는
다단계 판매를 하는 분 같다고 했다.

울산으로 빨리 내려가야 겠다는 마음이 앞서지만 아직 밖에는 바람이 무섭게 불어
댄다. 나무잎사귀들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스치로폴, 함석쪼가리들이 이리저리
뒹굴어 다닌다. 아내가 울산으로 내려가자고 부추기자 아들놈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내려가자면 아빠는 술을 마셔서 운전대를 잡지 못할 것이고
엄마에게 운전대를 맡길려니 이 태풍속에서 미덥지 못한 모양이다. 한숨 주무시고
새벽에 출발하면 될터인데.. 지금 내려간다고 태풍 속에서 아빠가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아들이 반문을 했다.. 아들놈의 말도 맞는 말인 것 같아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4시에 내가 운전대를 잡고 울산으로 내려왔다.

도로 주변에 힘없이 쓰러진 나무와 간판들을 피하면서 천천히 운전을 하여 울산에
당도하니 헨폰 전화벨이 바리바리 들려온다. 휴가간 직원들을 비상소집하여 빨리
회사로 나오라는 S O S 전화들이었다.

정말 오래간만에 샌드위치 토요일을 휴가를 내어 5일간 푸욱 쉬어볼려고 했는데
요놈의 하늘이 시기를 하여 매미를 보내는 바람에 똥누고 주져앉고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격이 되고말았다. 빨리 정상 운전에 돌입해야 할텐데 윷판에서
윷 모를 해도 직성이 안 풀릴텐데 계속 빠꾸또만 하니 죽을 맛을 보고있다.
태산이 저 높게 보이지만 오르고 또오르고 계속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는 진리를
믿고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내 딛는 기분으로 오늘도 매진하련다.

빌어 먹을 '매미' 내년 여름에 보자 왕거이 한테 걸리면 다 띠디러 잡아뿔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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