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위로
어느 교수가 자신의 경험을 진솔, 간결하게 이야기가 진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에게 몇 자녀가 있는데 특별히 아들 하나가 큰 고민에 빠졌답니다. 근심과 걱정, 상심, 실의, 마지막에 절망감에 빠져서 헤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그가 괴로워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이 아들에게 ‘왜 그러냐?’라고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물으면 더 괴로울까봐, 더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입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고민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그런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도 괴로워서 절망에 지친 이 아들은 어떻게 위로할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들이 자는 방에, 깊이 잠들었을 때 몰래 들어가서 그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눈을 빤히 뜨고 천장을 쳐다보면서 옆에 있는 이 아들, 저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 아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누웠다가 나왔답니다. 그 다음날 또 아들이 자는 방에 들어가서 옆에 누웠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리고 또 나왔습니다. 그렇게 여러 날을 아들 방에 들어가 옆에 누워서 밤을 지새웠다고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들어 와서 조용히 옆에 눕는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말이 없어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보다 더 괴로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중심, 내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분이 있다.’ 아들은 거기서 용기를 얻어 마침내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일을 새롭게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위로라는 게 뭡니까.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물리적 현상, 이것으로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과 인격의 관계란 대단히 심오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사람은 말이 없어도 내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데, 어떤 사람은 만났다하면 오히려 근심이 생기고 분노가 끓고 낙심하게 되고 도움은커녕 오히려 해가 됩니다. 그렇게 피해를 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나자고 해도 거절하게 됩니다. 반갑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 참된 위로, 참된 친구는 누구입니까. 나에게 위로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내가 어려운 일 당할 때 다 나를 비판하고 다 멀리 가버리지만은 그때에 오히려 내게 다가오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한 내 친구입니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는,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뭐 입바른 소리나 하면서 위로하겠다고 드는 사람, 길이 있겠지 어쩌고 쓸데없는 소리나 하는 사람 반갑지 않습니다. 성경에 욥이라는 사람은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을 겪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와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못했어요, 너무 비참해서. 일주일 후에 조용히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잘 생각해 봐라. 하나님은 공의로우신데 죄없는 자를 벌하시겠느냐. 잘 생각해봐라. 네게 숨은 죄가 있는 것 같다.”
여러 가지로 비판합니다. 논리적으로,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마지막에 욥이 견디다 못해서 “제발 입 좀 다물어. 그런 소리는 나도 할 수 있다”하고 대답하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가 어려움을 당하거든 반드시 찾아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옆에 있으라고 합니다. 그게 최고로 좋은 친구라고 합니다. 말 못할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찾아가 말없이 손을 잡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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