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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의 가을이 깊어갈때(하)

등록일03-10-27 조회수84 댓글0

땀에 젖은 등산복 상의가 몸을 감싸며 차갑게 다가올 무렵, 정상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힘겹게 내딛는다.

정상까지 이제 500여 미터...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시작의 여유로움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가쁜숨 몰아쉬며 그저 앞만 보고 손에 쥔 스틱에 힘을 가할 뿐...

서리내린듯 하얗게 탈색된 채 앙상한 가지만 남은 이름모를 나무들이
다가올 겨울을 인고해야할 외로움의 전령사 같다.

선행팀의 정상에 선 환호가 아주 가깝게 들리기 시작한다.
한발 한발 힘주어 내딛던 걸음이 더이상 오를 곳을 찾지 못할 무렵..
1,563m 비로봉 표지석이 시야를 가득 채우니.....
이 벅찬 감격은 정상에 선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던가..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맞대고 저멀리 설악산 대청봉이 다가온다.
언젠가는 대청봉에 올라 오대산 비로봉을 거꾸로 바라보리라 가슴에 새기며
시선을 동해로 향하니 강릉시가지가 뿌옇게 탈색된채 백두대간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백여 평이 될 듯한 정상부근은 비로봉임을 알리는 비석이 서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돌탑이 몇무더기 자리하고 있다.

벅찬 감동속에 빠져있는 동안, 기념촬영을 위하여 구름대장님이 줄서 계신것이 보인다.
미안함에 슬그머니 다가가 사진기를 꺼내들고 멋적은 웃음을 지으니 환하게 웃으신다.

이래서 산이 좋고 산사람이좋은가 보다....

정상 인근에 자리하고 준비해온 점심을 꺼내놓았다.
아침일찍 여성대원님들이 직접 싸놓은 김밥에 벤뎅이무침. 오징어회..
직접 재배한 찱옥수수가 허기진 뱃속으로 파고들며 평상시보다 두어배는 더 먹었음직하다.

은별님이 준비한 호두파이에 오대산을 뜻하는 초 다섯개를 꽂으니
바람이 절로 축하하며 촛불을 꺼준다.

대장님이 아껴논 양주 한잔에 몸을 덥히곤 서둘러 상왕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왕봉으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작은 숲길이 이어지며 오르막 내리막이 연이어 나타나는데
군데군데 주목나무와 고사목이 어우러져 지루함을 달래주고
가끔 아주 빨갛고 예쁜 열매를 가진 나무가 보이지만 도무지 이름을 알길이 없다.

상왕봉을 지나며 길은 왼쪽 비탈에 기대어 나있는 내리막길이다.
두로봉과 나누어 지는 곳까지는 능선을 타고 길이 나 있고 이따금 가파른 비탈로 나타나는데
숲이 울창해서인지 아래 쪽으로 심한 경사가 져 있어도 그리 위태롭지는 않게 느껴진다.

북대사 갈림길을 지나쳐 관대거리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드니 상원사까지 5.4km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휴~~~...달아오른 발바닥이 남은 거리에 더욱 후끈거리는것만 같다.

이따금씩 지나치는 차량이 만들어낸 뽀얀먼지가 지루함을 더해 갈 무렵..
도로를 가로지르는 가파른 내리막 경사로가 보인다. (이름하여 지옥의지름길-1)

힘주어 스틱을 잡고 앞선 발을 지짓대 삼아 힘겹게 내려오니 다시 이어지는 도로엔
.............상원사 2km 입간판........

무리하게 발목에 힘을 주어서인가? 오일빠진 기계마냥 무릎부터 삐끄덕 대는 느낌이 전해온다

속리산 말티재처럼 지그재그로 난 길이 한참 밑에 나란히 평행선을 긋고 있는것이
시야에 잡힐 때 또 다시 일행은 계곡을 향해난 지름길을 택하기로 했다.

물줄기가 흘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듯한 경사 70도 가량의 급한 내리막길..
아무렇게나 놓여진 돌들이 발굽에 차여 아래로 흐른다.
여기서 미끌어지면 끝이다...식은 땀이 솟고 스틱을 쥔손에 힘이 가해진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것을..지름길이 지름길이 아니었음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질 않았다.

바로 앞에 두렵게 떨며 내려가는 은별님과 받쳐주는 책가방님이 보인다.
짐짓 여유로운척 조심하라 소리치며 내딛는 순간 미끈하는 느낌과 함께 나딩굴어진다.

어~~~어~`......

다행히 짚은 손에 브레이크걸리며 주저앉아 버리니 안도감에 가슴이 콩당콩당 방망이질치는게
느껴진다.
길게 한숨 내어뿜고 다시금 아래로 아래로 발을 내딛었다.
가깝게 계곡의 물흐름 소리가 들리고 평지에 발을 딛는 순간에야 비로서 마음이 진정된다.

타는 갈증을 계곡물 한사발로 해소하고 상원사 주차장으로 접어드니 먼저 내려온 선행팀이
반갑게 맞아준다.

주차해논 차를 찾아 다시금 3km 가량을 걷는데 왜 그리도 멀기만 한지...
출발시의 힘찬 걸음엔 거리감을 못느꼈건만 지친몸이 천근만근이던가.
한참을 걸어도 끝이 없다.

작은별님 별장에 들러 힘들여 농사진 옥수수를 무료로 배분받았다
(식구들과 어제 맛있게 먹었습니다..고맙습니다)
거기에 더해 은별님과 뭉치님은 무공해 상추까지 꼭꼭 챙긴다....그저 공짜라면...ㅎㅎㅎㅎ

진부IC 인근의 산채백반집은 그야말로 성황이다.
먼저 손님상 채 치우기도 전에 자리하고 허겁지겁 나온 음식 구겨넣는데.....
시골 된장맛이 어머님 손맛이다.

서둘러 출발한 영동고속도로엔 행락객 차량이 가득 메우며 네온사인 밝힌 거리마냥 불빛이
가득한데, 감겨오는 눈꺼풀이 무겁게 짓누르니 운전에 도저히 자신이 없다.

미안스런 맘 접어가며 옆자리 뭉치님과 교대하니 어느덧 휑하니 뚫린 중부고속도로 앞이라..
(무려 3시간여를 밀려가며 운전해준 뭉치님께 감사드립니다......저는 교대하자마자 바로 코 골더래요..ㅎㅎ)

하루를 마감하는 깊은 잠속으로 오늘의 산행을 다시금 되새기러 간다....


PS..오대산행을 준비하고 대원의 안전을 책임지신 구름대장님,
     별장을 숙소로 제공해주시고 잔일을 손수 봐주신 작은별님,
     신혼여행온 듯 즐겁게 동참해주신 등나무님 부부,
     힘들어 하면서도 끝까지 완주한 은별님,
     독립할 각오로 산행에 참여한 예림부대장님,
    후미를 책임지고 기록을 세세히 해준 넉넉한 웃음이 멋진 책가방님,
    그리고 나의 멋진 친구 사고뭉치님께 함께한 산행의 즐거움과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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