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기/익살의시/정재윤/통닭
등록일0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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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키우는 보람이라는 게 이런가 보오.
큰 애가 어느 잡시사에 시를 응모하여
원고료 몇 푼을 받았다며 집에 들어오는 길에
통닭을 사왔구료.
먹음직한 통닭 두 마리
당신과 나
그리고 세 딸아이가
즐거운 마음으로 닭 앞에 둘러 앉았소.
당신은 다리 네 개을 사정 없이 찢더니
당신 앞에 하나 놓고
나머지 3개를
딸들에게 하나씩 배분해 주었소.
난 뭐야?
그래도 집안의 가장인데 애들 앞에서 체면이 있지.
딸들이 아빠도 좀 드시라고 조심스레 권유했지만
당신은 통닭을 끌어 안으며
"아빠는 밖에서 많이 드시잖니.
그리고 니들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시단다."
결국 가슴살 마저도 지들끼리 다 떼먹고
난 가슴뼈 사이사이에 붙은
다 식은 조각 살들과
물에 젖은 하얀 무만
식구들 눈치를 살피며 겨우 몇 개 집어 먹었소.
그러나 나의 설움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소.
당신은 통닭의 잔해를 치우며
긴 트림과 함께
기름 묻은 뻔질뻔질한 입술로
'오늘 저녁 잘 때웠다.' 하는 거였소.
난 그날 밤.
당신 자는 사이에 달걀 후라이를
그것도 일종의 닭이라고
티 안나게 하나만을 지저먹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들었소.
난 그날 밤 양계장 주인이 되는 꿈을 꾸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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