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비극으로 자리잡은 사건을 소시민적 시선으로 보듬어 맵지만 맛있게 그려낸 연극 <짬뽕>
지난 25년간 처절하고, 진중하게만 다뤄졌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짬뽕 한그릇때문에 일어났다는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즐겁고 발랄하게 접근하는 블랙코미디이다.
짜장면 한그릇에 250원하던 80년대 광주.
신작로는 자신의 인생에 봄이 오길 기대하며 춘래원이라는 중국집을 운영한다.
5월 17일 야심한 밤, 배달을 나간 만식이 군인에게 검문을 당하게 된다.
배가 고픈 군인들은 국가의 중대한 임무를 수행중인 자신들에게 짬뽕을 달라고 위협한다.그러다 만식과 군인과의 싸움이 벌어지면서 사건은 악화되어 간다.
더욱이 그날저녁 뉴스에는 군인이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사실과 다르게 보도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주는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신작로는 가족과 춘래원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다방레지인 신작로의 애인 오미란은 도청의 시민들을 위해 커피를 갖다 주려다 총에 맞아 죽고, 모두 거리로 뛰쳐나가는데...
처음엔 조금은 억지스러웠던 가상의 설정이 극이 진행될수록..
차츰 양념이 국물에 스며들듯 자연스러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픽션과 논픽션의 절묘한 조화로 만들어진 이 황당한 해프닝은 깊은 곳을 자극하는 감동으로 다가온다.웃음뒤엔 소시민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코끝이 찡해져옴을...
그당시 광주 시민들이 겪었을 고통,무고한 희생자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아픈 역사여..
나 역시 항쟁 전야에 광주 충장로를 걷다 무장군인들에 둘러싸인 시민들을 목격하기도 했기에..더더욱 실감나는 연극이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셔터를 내리고 적막감이 감돌던 거리, 최루탄이 터져 연기에 눈물이 줄줄 흐르던 그날.아..그날이여..
해외에 진출한 대한민국 대표적인 퍼포먼스 <난타>를 키워낸 연출가 윤정환님.
분명 어두운 소재임에도 유쾌하고 독특하게 채색하여 새로운 시선을 선보이는 연출이 참신하다.
국립극장 야외무대인 하늘극장에서 얼마전 이틀동안만 공연한 '5월의 신부'
역시 5,18 광주민주화 운동 25주년 기념공연으로 지금은 이지구상에 사라져버린 영혼들을 소재로한...
죽기직전 도청 커텐을 찢어 면사포를 만들고 혼례를 올린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
신부는 전남대 영문과 재학중이던 여대생이었고, 신랑은 그녀를 찾아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 휴학생이었다고..
초대권이 있었음에도 좋은 공연을 놓친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내년에 26주년 기념공연이 올려지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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