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뿌리기
옛날 어떤 농부가 있었습니다. 사실그 농부는 농사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것이 없엇습니다.
어느 날 그는 파릇파릇 싹이 올라온 보리를 보고 보리밭 주인을 찿아가
물엇습니다
"저기 밭에 파릇파릇하게 돋아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인이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면 저것이 자라 보리쌀이 되는 것입니가?"
주인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보리 심는
방법을 자세히 물엇습니다.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적당히 거름을 주면 보리가 잘 자랄
수잇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농부는 그방법대로 밭을 고르고 거름을 주고,
보리시을 뿌리러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문득 이런생각이 들엇습니다.
"씨를 뿌리기 위해서 왔다갔다 하면서 흙을 밟아버리면 흙이
] 굳어져 보리 싹이 잘 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평상을 밭에
가져다가 평상위에서 씨앗을 뿌린다면 흙을 밟지 않고서도
씨을 뿌릴수가 있겠구나.
농부는 일군 4명을 데리고 밭에 가서 어깨에 평상을 매게하고
자신은 평상 위에 올라가 보리씨을 뿌렷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따라 왓다가 농부가 하는꼴을 본 일꾼들은 모두 비웃으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이미 ㄱㅔ율의 밭을 갈아 보리의 좋은 싹이 나게 하려면 마땅히
스승에게로 나아가서 묻고, 가르침을 받아 행하여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야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잘못된 생각으로 진리의 세계와는반대 방햐으로
나아갑니다.또한 악한일을 많이 행하여 계율의 싹을 틔우지 못하니 그것은
저 어리석은 농부와 같이 두개의 발이 두려워 여덟 개의 발로 밟게 하는
것과같습니다.
모르는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냉철하게 살펴보면 모든 죄악의 뿌리는 모르는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탐욕스러운 마음도 결국은 존재의 상관성을 배제한채
자신밖에 모르는데에서 출발합니다.
화내는 마음도 결국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코 자신의 주방만을
옳다고 고집하는,자신밖에 모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을 알 수
잇을것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안다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잇겟습니까?
자신의 행위가 이 사회을 얼마나 부패시키는를 안다면 그런 행동을
할수 잇겠습니까?
우리는 모르고 행한 것에대해서는 쉽게 용서을 해줍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은 야심의 문제로서 더 큰 죄악임을 알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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