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의 숨바꼭질
해가 서산에서 뉘엇뉘엇 마지막 고개짓을 할 시간이면
이른 저녁을 먹은 아이들이 삼삼오오 골목에 약속도 없이 모여들었다.
꽃샘바람에 여전히 손등이 터 갈라져 피가 나고
작은손가락 만한 누런 두줄기 코를 입술 언저리까지 내려놨다 들여 마시기를 반복하고
그저 배불리 먹을 수 있기만을 소망하던 땟물절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들이
앞산을 넘어오는 달빛을 받아 반질거렸다.
가위 바위 보~
영희가 술래다.
술래가 만들어지고 자~ 시작이다!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
송서방네 외양간 귀퉁이 기둥에 얼굴을 묻고 술래가 외우면
우르르~ 어둠을 몰고 몸을 숨겼다.
텃밭에 쌓아둔 집채만한 볏짚더미 속을 뚫고 근식이와 들어간 나...
늘 하던대로 서둘러 옷을 벗었다.
스웨터를 벗어 근식에게 주고 벗은 셔츠를 받았다.
군대군대 기워진 내복, 또 뚫린 구멍으로 속살이 빼꼼히 보였다.
허나 거기에 팔 정신 없이 서로 옷을 바꿔 입고 바깥에 귀를 세웠다.
개집 뒤에 숨었다가 누렁이의 방해로 잡힌 경식이.
감나무 위에 올랐다가 미끄러져 들킨 배한이.
상만이네 닭장에 들어갔다가 수닭에게 수난당하고 닭똥만 주무르다 나온 경자.
속속 잡혀져 나오고...
영희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 안나올래? 다 알어~~ 여기 있지? "
짚단을 들추는 부시럭 소리가 나자 근식이가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침침한 어둠속을 질러 달음질을 치는데 술래 왈~
" 꼬마다! 너 내가 봤다아~~ "
근데 기둥을 붙들고 돌아선건 근식이....히히~
삐죽이 웃으며 나선 내 얼굴을 놀라 바라보던 술래가 울상이다.
" 으히히히~ "
" 까르르~ 킬킬"
몇 번의 숨바꼭질이 반복되면서 밤이 깊었다.
머리 위로 덩그라니 달이 올라 둥실거릴만큼 깊은 밤.
모두가 출출한 허기를 느낄 시간.
골목 대장인 영민이가 한마디에 모두가 흩어졌다.
" 다들 챙겨서 당재산으로 모여~ "
집으로 뛰어든 나는 낮에 봐뒀던 씨고구마 씨감자를 찾아서 광으로 갔다
사과나무상자에 담긴 고것들을 스웨터 앞자락에 싸서 안고 나왔다.
엄니한테 당할 후한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재산에 모여 장작을 세워 모닥불을 만들었다.
벌건 불속에 모두들 가져온 고구마 감자를 던져 덮어 넣고 기다렸다.
성질 급한 경식이는 고구마 꺼내어 익은 곳만 베어 먹고는 또 던져 넣다가 핀잔을 듣곤했다.
마지막 구이의 최고는 계란쌀 구이다.
계란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 드시고난 날계란 껍질을 모아둔것과 쌀 몇줌을 씻어 들고온 미녀.
아직 계란이 묻은 껍질 양쪽에 구멍을 넓히고 씻은 쌀을 밀어 넣고선 잿속에 던져 두면
쌀이 남은 계란을 흡수하면서 익어 갔다.
껍질을 깨내면 노랗게 익은 쌀...
고작 2개를 가지고 십여명이 나눠 먹는 것이지만 어찌나 맛나고 감질나던지...
하나 같이 얼굴에 검뎅칠이지만 초롱한 눈빛은 별보다 더 반짝였던 시절.
그렇게 달밤의 숨바꼭질을 마치고 돌아서는 아이들 어깨 위로 흐믓한 달빛이 걸쳐졌다.
다음날.
" 써글눔덜~ 아무리 배아지가 고파두 글치~ 씨할걸 가져가면 어쩌자는 것이여~ "
" 고거 쳐묵고 배아지 땃땃하더냐~~~앙?? "
" 이 속 창알이 없는 것들.. 어이그~~ 내 팔자야~! "
아랫집 배한이도 순이도 나도...
엄니의 빗자루를 피해 사립문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골목에서 만난 군상들은 또 키득키득~ 무언가 모의를 했으니...
그렇게 흙을 먹으며 자라난 아이들을 만났다.
이젠 주름이 자글거리고 희끗희끗 머리가 변색하는 즈음에 만난 친구들.
길게는 20여년만에 만나고 짧게는 몇 년만에 마주한 친구들.
더 이상 가릴것 없이 벗어재껴 놀던 친구들이었기에 금새 마음은 그 시절에 젖어들었다.
아쉬움으로 가득한 마음, 다음을 믿으며 돌아섰다.
꽃소식 보다도, 님소식 보다도, 더 반가운건
먼 옛날의 개구진 친구들의 소식이니....
이것이 나이듦의 징조려나~~!
새록새록 일어서는 옛날의 그리움으로
빈 가슴을 채우며
오늘 하루를 흘렸다.
= 風 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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