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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등록일06-01-27 조회수100 댓글0

경쾌한 음악을 들던 출근길에 중화요리집 옆골목에서
음식물을 찌꺼기를 수거하느라 애쓰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멈추고 거들다가 얼굴과 옷에 심상찮은 냄새가 나는 물이 튀었다
아저씨 앞을 아닌척 허둥히 웃으며 물러나와
샤워라도 할량으로 목욕탕에 들어섰다

옷을 벗어 수납장에 넣고 마지막 속옷을 벗으려는데
네살쯤 보이는 아이가 내 팬티를 잡아당기며 자꾸만
"이거 나 줘~" 한다
아이엄마가 안아가면서 옷 색깔인 터키그린을 아이가 좋아해서 그런다며 웃음을 흘린다
샤워를 마치고 온탕에 잠시 들어 앉았는데
그 아이가 들어와 대담하게도 턱밑까지 담그고 앉는게 아닌가~
가볍게 골리려고 물속에서 손으로 물결을 일으켰다
그런데 넘실거리던 탕안의 물이 그 아이의 코까지 출렁거리며
꿀꺽~ 한모금 물을 들이키고 말았다
아이는 놀라서 눈만 휘둥그레 뜨고서 아무말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아이는 온탕에서 그냥 돌아 나가고
'휴우~~  아이엄마한테 안들켰다'
오전 시간인지라 아이들은 없고
목욕탕 안에선 재밌는 두툼한 살덩어리들이 걸어다녔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것만 같은 뱃살을 빠른 손놀림으로 열심히 맛사지 하는 아짐.
수건으로 앞을 가리고 들어와 때를 미는 와중에도 신경써서 가리는 일에 치중하는 할머니.
탕안에 앉아 두루두루 남의것 구경에 여념이 없는 아짐.
몇 분을 겨우 견디고 나와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냉커피 큰 통을 두고 돌려앉아 수다에 재미붙인 아짐들.
어떤 재물을 두고 험담과 비아냥으로 입을 맞추느라 요란스럽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찌웠던 살을 뺀다고
뻘뻘 땀을 흘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살덩어리들.
거기서 역시 몇 분을 못넘기고 나왔다

 " 아가~ 내 등좀 밀어줄텨? "
한 할머니가 고개를 디밀며 말을 붙인다
 " 몇 살이여? "
 " 사십 넘어서 낼모레 쉰이네요~ "
말투를 바꾸며
 " 그려~어 그리안뵈는디 아그들은 있소~ 몇이나 뒀오 아짐? "
 " 그럼요~ 하나있어요 "
 " 아무래도 거지뿌렁 같은디~ 참말이다요~ 아짐? "
 " 등 안미실거에요? "
등을 돌려 앉으면서도 혼잣말을 멈추지 않는다
 " 우리 며느리도 아짐만큼 먹었는디... "
 " 같이 오자면 대꾸도 안혀~ 싫으면 싫다고라도 허지~"
 " 내아들 꿰차고 삼시롱 나한티는 오뉴월에도 찬바람이 쌩쌩 허다니께! "
 " 나도 지나이적 있었고 저는 언제까지 지금처럼 젊을줄 알것이구먼~ "
 " 내가 달리 살이찐게 아녀~ "
 " 방에서 좀채로 나가질 못허게 악다구를 쓰고 난리니깐 "
 " 집안이 조용할려면 내가 죽은듯이 자뺘져 있어야 혀~ "
 " 집이 절간이여~ 숨이 턱까지 막혀~ "
 " 할머니~ 때가 안나오네요~ "
 " 나올거이 읍것지~ 날마다 오는디~ "
 " 여기라도 와야 사람구경하고 말이라도 할수 있지~ "
 " 싸게 영감한티 가야할 거인디~ "
 " 노망들기 전에는 가야만 울아덜 고생 안할건디~ "
 " 목숨이 질기기도 허당께~ "
 " 밤이면 뼈마디가 안쑤신디가 읍어두 살아서 아침을 삼키니..."
 " 고맙소 아짐~ "
 " 고맙소.. 고맙소.. "

젖은 배곯던 시절 자식에게 다 빨려 뱃살위에 걸쳐있고
배는 물주머니처럼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고
다리는 퉁퉁 부어서 뒤뚱거렸다

고맙단 인삿말을 하는데 내 귓전에는
슬픈 노랫가락처럼 설운 메아리가 되어 거푸 들린다

나도 저 나이가 되련마는....


         
 
= 風 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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