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의 보릿고개 4
몇 번을 기워서 꼬장한 포대기로 젖먹이 등에 달고
또아리 챙겨들어 집을 나선다
30리 길의 쨍볕이 아침부터 기세를 부린다
신작로를 따라서 십여리 가다가 논둑길로 접어든다
독새풀에 점령당한 논바닥들이 하늘거리는 바람에 오히려 멋스러워 보이는데
우르르 몰린 먹을것 없는 참새들의 잔칫상이 되었다
대바구니에 보리밥 펴담아 걸어두고
김치독 망태에 달아서 우물에 담가두고
숭늉 끓여 살강에 올려 덮어 뒀는데...
그나마도 히멀건 천정보고 누워서 챙겨먹지 않을듯 한 서방...
아이들이야 삶아 둔 고구마 한 양푼에도 반가워 할테지만..
한숨을 몰아쉬며 고무신 바닥이 뜨거워지도록 재촉한 걸음이
강경 뱃전 젓갈장에 다다랐다.
새우젓, 황새기젓, 잡젓
젓갈을 받아이고 집으로 되내려오며 젓갈을 팔았다
개들이 주인노릇을 하는 곳이 대부분인지라 다리품을 무던히 팔고 지쳐가던 즈음.
두어 시간이 지났는데도 한바가지를 덜었을 뿐, 그대로 남아서 걸음이 무겁다
처음 들어선 동네.
향나무 그늘 밑 정자에 한가한 노인들 옆에 다라이 내려놓고 쉬어 앉았는데
" 뭔 젓갈이여? "
" 새비랑~ 황시리여라~ "
" 낼 우리며느리가 젓갈받으러 간다던디... 어디 함 보세나~ "
" 존걸루 받었네~ 이거 다 털어버리게나~ "
주거니 받거니 흥정을 마치고 노인을 따라서 집으로 갔다.
대가집 높은 토방에 또아리 깔고 걸터앉아 기다리는데
열무에 보리밥 넣고 고추장 한술 얹은 양푼을 내민다
마루에 젖먹이 안고 앉아서 어찌나 달게 먹었던지....
시원한 물 한사발까지 얻어 먹고 쌀과 돈으로 값을 받아
" 고맙구만이라~ 감사허구만이라 아짐~~ "
고개를 조아려 인사를 하는데 골마리를 뒤지더니 기차삯을 내민다
황망하여 손사레를 치는데도 막무가내로 내손에 쥐어준다
" 등에 어린것 달고 언제 또 걸어 갈겨~ "
" 나 같은 사람도 있고 또 험한 사람도 만나고 그럴거 아닌감~ "
" 신세진다 생각말고 기차 타고 내려가게~ "
" 피난 때 잃어버린 내 동상 생각나서 그러는 것이니께 "
" 어여 서둘러 가소~ 해 저물것네~ 어여! "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아버린 날이다
그런데 무작정 좋아야 하는데도 부끄럽고 내 신세가 한심스러워지는건 왜인지...
개찰구를 빠져 나와서 기차가 올 방향만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꽃샘바람이 제법 시립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얼르며 동동거리고 있는데
중년남자 한 분이 코드를 씌워 주는게 아닌가.
" 아이발이 차가워서 벌게요~ "
" 잠시 기차 올 때까지만이라도 덮어 줘요 "
그리고는 미련하게 들고있던 보따리를 뺐듯이 내려놓는다
얼굴이 달아올라 옴짝도 못하고 그자리에 몸이 굳어 섰다
아이는 금새 잠이들었는데 기차가 눈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코트를 들고 가버린 그 분.
고맙단 말조차 하지 못하고 기차에 올랐다
설겆이를 마치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는데
마루에 앉아 바라보노라니 추녀 끝에 걸린 별의 반짝임이 곱다
' 그렇게 친절한 사람과 사흘만 살아봤어도.... '
잠깐 스치듯 본 그 인자한 얼굴이 떠나지를 않는다
아이를 염려하여 옷을 벗어 덮어주던 자상함의 감동이 살아난다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친절을 보고난 밤이 설레임으로 젖어 새소리조차 구슬프다
우연이라도 또 한번 봤으면...
타인의 신세를 받기만한 하루가 우울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설레이게 한 누군가를 봤다는 흥분이
좀처럼 잠들지 못하게 한다
방안에선 선잠든 서방의 가슴아픈 기침소리가
쩡쩡 어둠을 흔든다
' 죄로 갈 생각이지만...
그런 자상한 분과 사흘만 살아봤으면....
더도말고 딱 사흘만이라도...'
= 風 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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