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이 흐르면 ~~~


세월이 흐르면
잊혀질거라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많은 것들이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잊혀진 것은 일상의 사소함 뿐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있습니다

사소함이 지워진 과거를 배경으로
오히려 더 뚜렷해진 기억은
나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잊혀짐으로써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은
그저 헛된 소망일 뿐

얼마나 오랫동안
이 기억을 지니고 살아야 할지
죽을 때에도 잊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두려워 집니다

잊기 위한 시간
자유롭기 위한 시간은
아마도 내 남은 삶으로는 부족할 거 같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안고 살아야 할거란 생각에
긴 한숨으로 체념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도 저와 같은 생각일지 모르기에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깁니다


2002. 2. Fau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