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게시판

은희 이야기 (6)

등록일02-09-12 조회수94 댓글0

그날
암자뜰에 따가운 가을 햇살이 기운을 잃고 있을때,
온종일 꿈쩍 않고 몰입하던 공부를 덮고, 문을 밖차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초하루..
여스님들이 모두 저 아래 직지사큰절에 다니러 가고 암자에는 더 적막감이 돈다.
날마다 하는 공부인데, 오늘따라 왜그렇게 잘되는지. 딱딱한 법규조문들이 선명하게 이해되어 머리깊게 와 닿으니, 이렇게 계속 되면 내년에는 기어코 목표달성 될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버지.
군청에서 계장으로 마감한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기관의 행정직이 부러웠는지 나를 법대로 몰았고, 기어이 고시 준비를 시키신 것이다.
아마 막내인 나를 통해서 아버지의 꿈을 실현 시킬려는 의지 앞엔 나로선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대전에서 나를 서울에 유학 시키고, 어려운 살림에 꼬박꼬박 하숙비를 부쳐주신 고마움..
아버지의 뜻에 부응 해서라도 합격해야 될텐데...

늘 다니던 개울로 내려가던 산책길.
어디서 가느랗게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물푸레나무 우거진곳,  나무를 휘감은 칡넝쿨에 무엇이 걸려 있다.
자세히보니 사람이었다.
아! 저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칡넝쿨에 걸린것 같다.
다행히 칡넝쿨에 걸린것이다.
아래엔 개울이고 큰바위가 많은 곳인데...
얼른 나무숲을 헤치고 칡넝쿨에 걸린 사람을 끌어 내어보니
다름아닌 은희였다.
"누, 누구신가요? 절 도와주신분이..."
가느다란 체구, 백지장 처럼 핏기 없는 얼굴, 촛점잃은 눈동자...
두려움에 움추려 있는 모습이 마치 덧에 걸려 있는 어미잃은 사슴같은
느낌을 준다.
"겁내지 마세요. 이 암자에 기거하는 고시생입니다."
" 어쩌다가 이렇게..."
" 너무 답답하고 궁금해서 내려오다 그만..."
" 여기는 산중입니다. 길이 잘 닦여져 있지 않아 혼자 다니기가 어렵습니다.칡넝쿨에 걸려서 다행이지,큰 일 날뻔 했습니다."
" 자 제 등에 업히세요 방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망서리듯 하더니, 순순히 등에 업힌다.
따뜻한 은희의 체온이 내 등에서 가슴속으로 전해온다.
아 향긋한 냄새,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자냄새, 쿵닥 거리는 은희의 심장이 나에게 커다란 울림이 되어 전해진다.

계속...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381. 매곡길8

Copyright © 퀘렌시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