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게시판

어느 시골 교장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등록일03-05-07 조회수96 댓글0

매화가 지더니 산수유가 피고 그새를 못 참은 벚꽃과 개나리… 그 무수한 봄꽃들이 헤게모니도 없이 릴레이를 하며 유순하게 피었다가 진다.

그렇게 꽃들과 봄 햇살의 위로를 받으며 전남 곡성 겸면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통틀어 칠 십 여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평화로운 작은 시골 학교다.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학교 관계자가 반갑게 맞이한다. 누굴까, 교무부장일까? 어림잡아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학교 교장인 이천만(61) 선생이다. 짐작이 빗나간 것은 기자의 잘못이 아니다.

통상적인 교장의 근엄함과 권위를 찾을 수 없는 자유스러운 복장과 소탈한 모습 그리고, 아담한 교장 집무실은 판단 착오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인사를 나누던 도중 우편물이 배달됐다. 우편물 틈새에서 엽서 한 장이 나 뒹굴었다. 엽서를 살피던 이 교장이 헛웃음을 친다. 책상에 놓여진 엽서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해묵은 사람의 글씨체다. 일부러 엉성하게 쓴 붉은 글씨는 보낸 사람 '전교조' 받는 사람 '겸면초등학교장 이천만'으로 되어 있다.

"어느 교장의 자살 앞에 너나 자살해라. ×같은 소리 저 혼자 똑똑하고 야문 체 세상에 너보다 못한 놈들이 누가 있더냐. 짠허다 자슥아!"
 
정년을 이태 남겨 둔 그는 시인이었다. 전남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동시·동화작가로 동시집 '바다를 가슴으로 뜨는 별'과 장편동화 '도깨비 우화나라(소년동아일보)'를 펴낸 작가였다.

교직생활 38년째인 그는 '무등전통문화교육연구교사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교육 수상록인 '훈사정음(訓師正音)'과 '학교운동회 민속놀이 축제론' 등의 논문을 펴냈다.

이천만 교장은 최근 전교조 전남지회 홈페이지에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원문은 아래 별도 <박스기사> 참조)이란 글을 게재했다가 익명의 협박편지와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KBS 100인 토론에 초청됐던 그는 △옳고 그름이 명확한 사안을 논쟁거리로 몰아가는 분위기 △정당한 주장조차 매도되는 매카시즘적인 분위기 △보수집단(교총, 교장단, 보수교육단체, 수구언론, 정치권 등)이 똘똘 뭉쳐 전교조를 매도, 축출, 와해시키려는 분위기에서의 토론참여는 무의미하다는 판단에서 불참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15일 전남 곡성군 겸면초등학교를 찾아가 나눈 이천만 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같은 교장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사건은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이다. 교사이든 기간제 교사이든 혹은 강요였든지 자발적으로 했든지 간에 어떻게 교사가 차 시중을 할 수 있는가. 교직은 품위를 소중히 여기는 직업이다. 교장은 교사의 품위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차 시중을 한다고 해도 말렸어야 했다. 윗사람에게 차 한잔 타 드리는 게 무슨 문제냐고 바라보는 가부장적인 사회와 교육풍토가 빚은 비극이다.

서 교장 자살사건에는 객관적 사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우 진실을 증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보수세력들은 사실보도와 확대를 통해 진실을 외면할 뿐이다.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사실을 있게 한 감춰진 진실이다.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교직자라면 서 교장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본다."

- 보수언론의 '마녀사냥' 식 보도태도가 문제를 왜곡시키고 확산시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진실의 실체는 외면한 체 전교조 죽이기에 혈안이 됐다는 지적인 데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떻게 보는가.
"암흑과 무지의 시대였던 중세에 정략적이고 종교적으로 악용됐던 '마녀사냥'이 다시 살아난 느낌이다. 21세기의 보편적 시각으로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이해할 수 없듯이 전교조를 겨냥한 보수언론의 무차별적 매도 또한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 홍세화씨는 한겨레칼럼을 통해 '전교조 죽이기' 시도는 기득권을 누려온 세력들이 개혁바람에 불통이 튈 것을 우려해 표출된 위기의식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사건은 이미 교육계를 벗어났다. 마치 누군가의 조종에 의한 것처럼 광풍이 불고 있다. 김지하 시인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주문도 정치적으로 악용됐고, 전교조 대량해직에 대해 정치적 불만을 터트린 대학생들의 정원식 국무총리 계란세례를 제자가 스승을 폭행했다고 호도했다. 이번 사건 또한 보수·수구세력이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문제로 감정을 유발시키며 정략적으로 악용하며 정국전환을 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학교에 '접대계'가 존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교육청이나 외부의 높은 사람들이 방문하면 여교사들이 수업 도중에 차 대접을 하기 위해 빠져 나온다는 것인데 그러한 경우가 있는가.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에는 '슬리퍼계'와 '접대계'가 있었다. '접대계'는 여교사로 구성된다. 차 시중을 들고 싶은 여교사는 없다. 다만 관례화가 돼 싫어도 내색하지 못한 채 억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체제에서 약자인 여교사가 차 시중을 거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 교육청은 진 교사가 차 시중 문제를 제기했지만 교장과 교감만을 만나 의견을 들었을 뿐 당사자인 진 교사의 의견은 외면했다고 한다. 가령 진 교사의 의견을 청취했다면 문제 해결이 쉬웠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갈등을 풀기보다 꼬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다. 교육당국의 문제 해결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청은 처음부터 진 교사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고 외면한 것이다. 교육청 체제는 한마디로 수구·보수적이다. 이들은 명령과 통제로 학교 현장을 움직여왔다. 이들이 학교 현장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교사의 입장을 대변해줄 것을 기대해선 안 된다. 교육청이 통제와 제재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한 줄로 세우려고 하지만 교장들은 적당히 순응하거나 동조할 뿐 극복할 의지가 없다. 교육부와 도교육청이 자율적인 학교 운영 운운하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 교장단을 포함한 교육당국과 전교조와의 갈등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해야 갈등을 좁히고 해소할 수 있다고 보는가.
 
▲ "전교조 교사는 옳았고 나는 부끄러웠다"  

"갈등의 가장 큰 책임은 교장단에 있다. 전교조를 적으로 보는 교장들의 시각이 문제다. 교육계의 원로이고 선배라면 후배 교사들을 다독거리고 포옹해야 한다. 교육의 근본은 사랑이다. 아이들이 잘못을 했다고 무조건 때리는 게 교육인가. 선배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포용해야 한다. 교장들은 전교조에 의해 그 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한데 그것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로 회복되어가는 것일 뿐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적이 아니라 교육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대화 상대이다. 전교조를 인정하고 포용해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데 교장들은 전교조를 내리치려고만 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대화상대가 안 된다고 거부하는데 과연 그들이 생떼 쓰는 사람들인가. 무모하고, 무지한 사람들인가. 그렇지 않다. 전교조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합법화됐고 교육의 책임 주체로 인정받은 조직이다."

-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죽음이 잇달아 발생해왔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물론이고 언론과 정치권은 이를 외면해왔다. 죽음의 교육을 생명의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바람이 염원처럼 크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한 여중생이 자살했을 때 교장단과 우리 사회는 어떤 대책을 강구했는가. 초등학생이 새처럼 날고 싶다며 자살했을 때는 또한 어떻게 대처했는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던 세력들이 초등학교 교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 불순한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교육과 생명을 존중했다면 그 아이들이 희생될 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방안을 찾았어야 했다.

언론과 교육계는 구호처럼 생명존중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교육체제 개선 없이는 생명존중 교육은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을 존엄하게 여기는 교육을 펼칠 의지가 있다면 교육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문제아를 정상아로 회복시킨 영국의 '썸머힐(일명 자유학교)'처럼 교육철학이 담긴 교육을 시도하면 생명존중 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교육 체제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 교장의 독선적 학교 운영이 갈등의 불씨를 제공한다는 지적이 있다. 학교 민주화를 위해서는 교장 민주화가 급선무라는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육법 제81조에는 '교장은 교무를 통찰하고, 소속 직원을 감독하면서, 학생을 교육한다'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학생을 교육한다'고 돼있다. 교장들은 학교경영의 책임과 권위를 절대권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권위나 권한은 학교 공동체의 몫이지 교장 개인의 것이 돼선 안 된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교장·교감이 기간제 교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과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교장은 학교 운영을 대리하는 역할이다. 권한 행사 또한 교장 마음대로가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행해야 한다. 학교 민주화는 학교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데서 찾아야 한다. 아직도 교육 현장에는 일제와 독재가 남긴 파시스트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 독단과 독선에 익숙한 교장들은 자기의 결정이 법이고 선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이것은 무거운 짐일 뿐이다.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교사들과 함께 논의하며 학교를 운영한 결과 학교 구성원 모두다 행복해하고 있다."

- 서 교장 자살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문제 해결방식이 매우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는 쌍방향 토론과 대화보다 주입식 교육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인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선시대에는 토론문화가 활발했다. 당시의 정치문화는 곧 토론문화였다. 토론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은 일제 강점에 의해 왜곡되고 단절된 탓이다. 국민들 저변 속에는 토의문화가 스며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불순한 세력이 토론문화를 오도하고, 호도하고, 차단하면서 본질과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게 문제다. 오류 된 결론이 내려진 배후에는 늘 언론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 전교조는 교육의 중요한 책임 주체로 성장했다. 그런 만큼 책임 있는 요구와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전교조가 개선해야될 점과 추구해야 할 방향이 있다면 말해달라.
"교장을 비롯한 교육관료들은 전교조는 과격하다, 정치적이다, 급진적이다, 심지어는 버릇이 없다고 지탄한다.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해직 당하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부당한 권력과 싸우며 바른 길을 걸어온 교사들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동참하지 못했다.

권력과 맨몸이 부딪힐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최류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를 때는 돌을 던지며 최소한의 방어를 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단편적인 것을 문제삼는데, 정의는커녕 자신의 욕심과 안위만을 챙겨온 사람들이 과연 전교조 교사들을 폄하하고 질책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침묵한 죄를 반성해야 한다. 나는 전교조 교사들에게 한없는 부끄러움을 갖는다.

나중에 자식들이, 전교조 교사들이 해직되고 투옥될 때 아버지는 교육자로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너희들을 먹여 살리고, 부모를 공양하고, 형제 돌보는 데 급급했다'는 말로 변명할 수 있을까. 교장단에서는 내가 전교조를 두둔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양심대로 살지 못한 부끄러운 교육자로서 끝까지 침묵을 지키다 물러날 수는 없다. 교장단이 돌팔매질을 해도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옳았고 우리들은 부끄럽고 비겁한 교육자였다."

- 공교육 정상화와 학교 민주화의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학부모라는 지적이 있다. 올바른 교육발전을 위해 학부모와 학교관련 단체가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학부모의 주장이 강해질 때 학교와 교육은 파행을 겪는다. 보성초등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빨리 등교시켜야 한다. 학부모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것은 노동자가 지하철을 볼모로 삼아 파업하는 것과 전혀 다른 문제다. 학부모와 주변 단체는 이 문제에 개입하기보다 한발 물러서서 문제가 해결되도록 지켜봐야 한다. 진정 교육자를 존중한다면 교육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두고 이 세상에 스승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며 답답한 마음에 오마이뉴스에 오른 글을 조금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앞에 부끄럽지도 않고, 추하지도 않고 당당한 선생들이였으면 참 좋겠습니다.

더 이상 가슴 아픈 일이 없기를 바라며  
슬픈 오월의  하늘이 무겁게 내려 앉은 날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외추리 381. 매곡길8

Copyright © 퀘렌시아. All rights reserved.